[세계 3대 커피] 하와이안 코나 엑스트라 팬시
국내에서 특히 고급 커피의 대명사로 불리는 커피는 개인적인 생각으로 커피의 황제로 불리는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동물 커피의 대명사인 ‘루왁 커피’, 마크 트웨인이 사랑한 ‘하와이안 코나 엑스트라 팬시’, 커피의 귀부인으로 지칭되는 ‘예멘 모카 마타리’, 이제는 최고급 커피로 누구에게나 이견없이 인정받는 ‘파나마 게이샤’ 등 5가지 정도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굳이 5대 커피가 아니라 3대 커피로 정리해 보려는 이유는 커피의 취향은 개인적인 것이며 스페셜티 커피가 각광을 받는 현재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3대, 5대 커피 등을 가리기는 너무 어려우므로 꽤 긴 시간 동안 사랑받았던 커피의 대중화를 이끈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하와이안 코나 엑스트라 팬시’, ‘파나마 게이샤’ 3가지의 커피가 가장 전통적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커피의 황제로 불리는 ‘하와이안 코나 엑스트라 팬시’와 관련된 이야기를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세계 3대 커피] 하와이안 코나 엑스트라 팬시
하와이를 약탈한 미국
하와이제도는 1778년 스코틀랜드계 영국인 탐험가 제임스 쿡이 유럽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최북단에 있는 카우아이섬에 상륙하면서 세상에 알려집니다. 영국은 당시 세계적인 무역상품 설탕을 조달하기 위해 하와이 왕국 수립을 지원하게 됩니다. 카메하메하 1세는 1795년 하와이 왕국을 선포하는데, 수도를 마우이섬의 라하이나로 정합니다. 그는 1810년 카우아이섬의 족장에게서 항복을 받아내면서 하와이 제도를 통일하고 스스로 국왕의 자리에 오르게 되고, 사탕수수 판매를 통해 큰돈을 벌게 됩니다.
하와이 왕국의 전성기를 연 사탕수수
기원전 327년에는 알렉산더가 인도를 침략해서 사탕수수를 보고 “벌 없이 꿀을 만드는 갈대”라고 탄복했습니다. 기원후 500년쯤 페르시아에서도 사탕수수를 재배했고, 그 후 이곳을 점령했던 마호메트 군대가 이집트로 재배농법을 전해 이집트를 통해 755년 지중해를 건너 스페인으로 퍼지게 됩니다.
설탕은 11~13세기 십자군전쟁을 통해 유럽 전역에 확산되며,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는 1493년 두 번째 항해에서 카리브해의 아이티섬에 사탕수수를 전하게 됩니다. 이후 페루, 브라질,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등 남미의 거대한 땅에서 사탕수수가 재배됩니다. 1600년쯤 설탕은 엄청난 돈벌이 수단으로 부상해 세계적으로 생산량이 늘었지만, 여전히 유럽에서는 사치품으로 분류될 만큼 귀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18세기말부터 거대한 미국 시장이 부상했으니, 하와이 왕국으로서도 사탕수수 생산에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와이의 커피나무
흔히 “하와이 커피는 미국인들이 브라질에서 옮겨 심은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잘못된 이야기입니다. 하와이 커피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분명한 것은 그 시기가 하와이 왕국 때라는 사실입니다. 가장 앞선 것은 하와이 왕국의 초대 국왕인 카메하메하 1세 시절, 국왕의 고문으로 있던 스페인 의사 돈 프란시스코 마린이 1613년 오아후에 커피 묘목을 심었다는 기록입니다.
코나 커피의 기원은 오아후에서 자란 커피나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미국 코네티컷주 출신인 새뮤얼 러글스는 1825년 오아후의 커피나무 가지를 여러 개 꺾어다가 코나에서 성공적으로 키워냈습니다. 커피는 씨앗뿐만 아니라 꺾꽂이를 통해서도 번식할 수 있는데, 품종은 에티오피아의 고산지대에서 유래한 것으로 하와이 사람들은 ‘카나카 코페’라고 불렀습니다. 카나카는 폴리네시아어로 ‘사람’을 뜻하는 것으로 하와이 커피를 뜻합니다. 지금도 코나에서는 티피카 원종과 함께 이 품종이 자라고 있습니다. 1830년대에는 하와이제도의 최북단인 카우아이에서도 커피가 재배되어 전체 섬에서 커피를 생산하게 됩니다. 코나에는 또 과테말라에서 들어온 품종이 있는데, 이 품종은 하와이 왕국의 마지막 해인 1893년 헤르나마 와이드만이 들여온 것으로 ‘코나 티피카’로 불립니다.
향미가 뛰어난 하와이안 코나 커피
하와이제도의 8개 큰 섬들 가운데 남쪽 끝에 있는 하와이섬, 크기가 가장 커서 ‘빅아일랜드’로 불리는 이 섬에 ‘코나’라고 불리는 작은 지역이 있습니다. 후알라라이산과 마우나로아 산이 이루는 서쪽 해안 쪽 경사지를 따라 가로 3km, 세로 32km만 한 땅이 코나이고, 여기서 생산되는 커피만이 ‘하와이안 코나 커피’로 불립니다. 이 지역에는 약 6000평 안팎의 작은 커피 농장이 600여 개 있으며, 연간 생산량이 500t 정도에 불과합니다. 코나 커피가 이처럼 귀하다 보니 하와이 주정부는 코나 커피가 10%만 섞여 있어도 상품명에 ‘코나’라고 표기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코나 커피를 구입할 때는 몇% 가 섞여 있는지 꼭 확인해야 합니다. 많은 커피 포장지 중에 100%라는 표기가 코나 커피에 유난히 많은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코나 커피가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은 토양과 기후가 커피를 재배하기 최적의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수확률을 높이거나 병충해에 강하도록 개량한 품종이 아닌 원종을 재배하기 때문에 향미가 뛰어납니다. 토양은 화산활동으로 생겨난 하와이의 화산재가 넉넉하게 쌓인 화산 토양으로 미네랄이 풍부하며 물 빠짐이 좋아 커피나무가 자라는데 최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하와이에는 주기적으로 거대한 회오리인 토네이도가 발생하지만, 코나는 두 화산 사이의 완만한 경사에 걸쳐 있는 특이한 지형 덕분에 안정적입니다.
커피는 고산지대에서 수확한 것이 향미가 깨끗하고 좋은 것으로 평가받는데, 코나의 커피벨트는 사실 해발고도 250~900m에 형성되어 일반적인 커피벨트보다는 고도가 낮습니다. 그러나 코나는 햇볕이 강한 날에도 오후 1~2시가 되면 구름이 생겨 커피나무에 그늘을 드리우는 ‘프리셰이드’라는 특별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이 덕분에 평균기온이 낮아지고 고산지대에서 수확한 커피와 같은 면모를 갖추게 됩니다. 이에 더해 하와이대학과 미국 정부의 연구기관들이 지원하는 과학적 재배법과 신기술 덕분에 병충해에 약한 원종을 재배해 왔지만, 세계 각지의 아라비카 원종 경작지 중에서 단위 면적당 최대의 수확량을 자랑합니다.
마크 트웨인이 사랑한 하와이안 코나 커피
미국의 골드러시로 인해 1850년대 하와이에서 생산되는 사탕수수와 커피는 수요량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이로 이해 하와이 왕국은 중국인, 일본인 이후에는 한국인까지 이민 노동자들이 몰리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커피보다 노동이 덜 고된 사탕수수 농장으로 몰려들었고, 이에 따라 농장주들도 커피보다는 사탕수수를 선호했습니다. 여기에 1860년 가뭄과 병충해로 인해 하와이의 커피밭이 거의 사탕수수밭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코나 커피만은 병충해를 피해 갈 수 있었고, 사탕수수 재배에는 적합하지 않은 등 천운으로 커피 농장이 대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1890년대가 들어서자 사탕수수와 커피는 입장이 뒤바뀌게 됩니다. 추운 북유럽에서도 키울 수 있는 사탕무가 엄청난 설탕의 수요를 충당하면서 사탕수수의 매력은 급락했고, 카페인 효과는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쳐 유럽과 미국에 큰 커피 소비시장을 만들어나갔습니다. 하와이에서 유일하게 남다시피 한 코나의 커피 농장에 주문이 쇄도하면서 코나 커피의 몸값은 치솟게 되었습니다.
코나 커피는 특히 ‘미국 문학의 링컨’으로 불리는 작가 마크 트웨인이 찬사를 보내면서 ‘마크 트웨인이 사랑한 커피’로 더욱 유명세를 타게 됩니다. 세계 곳곳을 여행하던 마크 트웨인은 1855년 하와이에서 4개월 동안 머물며 쓴 편지에서 “코나 커피는 그 어느 곳에서 재배되는 커피보다 향미가 풍성하다. 코나 커피는 최고의 커피가 자라야 할 곳에서 재배되고 있으며, 당신의 찬사를 받을 자격이 충분히 있다.”라고 적어 코나 커피의 명성은 미국을 넘어 세계로 퍼지게 되었습니다.